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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소설, 보고 싶은 만큼 보이는 아름다움.

by 1인칭마음 2024. 2. 11.

 

 사진을 배우고 있다. 몇 년 전에 선물 받은 니콘 700 카메라를 들고 해운대 바닷가로 향했다. 오후 4시쯤의 겨울 바다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과 정오의 화려함을 벗은 늦은 오후의 은은한 햇살과  아이들 주변으로 몰려있는 갈매기떼, 그리고 풍성한 하얀 거품의 파도들이 어우러져 생기가 가득했다. 카메라 작동이 서툴러 그 밝은 생기가 카메라에 전혀 담기지 않았다.사진은 빛을 먼저 알아야 한다. 빛을 조절하는 조리개, 셔터, ISO를 이리저리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계속해서 연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사진다운 사진이 찍히기 시작했다. 

 

 눈으로 보는 세상과 카메라로 담긴 사진 속의 세상은 같은 듯 다르다. 역광으로 그림자처럼 찍힌 어린 딸과 엄마의  모습,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서 홀로 어딘가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갈매기, 파도에 떠밀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기다란 미역. 주인을 바라보며 행복한 듯 웃으며 걷는 강아지등 순간의 모습들이 사진 속에 긴 이야기가 되어 담긴다.

 

 방파제의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속에 담으려는데 역광의 해는 사진에 잘 담기지 않았다. 한숨을 쉬며 방파제에 기대어 노을 반대쪽 바다를 바라보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구석진 바다의 한쪽에 잔잔한 파도의 잔물결이 하루종일 머금었던 햇살을 길고 반짝이는 윤슬로 뿜어내고 있었다. 서툰 카메라로 열심히 사진에 담았다. 백사장 안쪽까지 밀려온 파도 위에 온전한 형태를 드러낸 화려한 윤슬, 밀려나가며 하얀 파도에 부서지는 윤슬, 파도의 물기를 머금은 모래 위에 작은 별처럼 반짝이는 윤슬...  사진에 담긴 윤슬은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사진은 무심코 지나칠 순간들이, 서터를 누를 때도 몰랐던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리고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아니, 볼 수 있었지만 보지 않았던 것을 일깨워 준다. 클레어 키건의 이 소설이 그렇다. 


 

 아주 짧은 중편 소설이다.  책을 읽기 전 수많은 찬사를 받고 이슈가 된 작품이라 기대를 하며 첫  장을 열었다. 2시간 만에 완독을 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을 읽고 고개를 갸웃했다. 울림과 감동의 크기가 기대보다 작아 당황함마저 느껴졌다.

 

 내가 뭘 놓친 걸까? 하며 소설 뒤쪽의 작가의 말을 읽어 나갔다. 막달레나 세탁소의 배경을 담담하고 짧게 서술한 내용이 전부였다. 더 당황스러웠다.  나의 독해 수준이 이제 한계가 온 걸까? 하는 생각을 뒤로하고  옮긴이의 글을 읽어 나갔다. 옮긴이의 말에는   '좋은 글은 정부 암시이고, 나쁜 글은 전부 진술이다'라는 말을 담은 작가의 편지, 그리고 ' 저자가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드러내지 않고 암시하고자 하는 부분이 얼마나 큰지...'라는 옮긴이의 번역소감이 있었다. 작가도, 옮긴이도 두 번, 세 번 읽기를 권하고 있었다. 어차피 두 번 읽기로 했기에 그래, 뭔가가 있나 보다 라며 며칠 뒤 다시 처음부터 두 번째 읽고, 또 며칠 뒤 세 번을 다시 읽었다. 

 

 읽으면서 정말 보이지 않은 것들이 하나씩 더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끄러운 감정이 조금 들었다. 찬사가 가득한 이 책의 첫 장을 펼칠 때 내가 기대한 것은 아름다운 문장의 향연과 짧은 이야기 속의 강렬한 감정이었다.  나는 이 책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했다. 책을 거듭 읽을수록  볼 수 있었지만 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일랜드의 소도시에서 석탄목재상으로 아내와 다섯 딸들과 함께 어려운 시기에 그럭저럭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는 펄롱이 마을의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게 되면서 가지게 되는 내면의 갈등과 사건들을 차분히 그려나간다. 

 

 작가는  잔소리 같지 않게, 혼나고 부끄러운 느낌이 들지 않게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담담하고 조심스럽게 독자에게 호소한다.  펄롱은 그런 작가의 의도를 가진 성격의 인물이다. 자신의 생각을 겉으로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섬세하고 예민하게 세상을 바라본다.  펄롱이 매일 보는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은 그저 지나치는 것들이 담긴다. 

 

'펄롱은 찻잔을 손에 들고 창가에 서서 거리를 내려다보고 멀리 보이는 강을 바라보고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일을 구경했다. 떠돌이개가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물을 찾고, 튀김봉지와 빈 깡통이 비바람에 이리저리 날려 구르고....'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 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고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창고보다도 추운 집에서 지내며 외투를 입고 자는 사람도 있었다..... 시골로 가면 젖을 짜달라고 우는 젖소들이 있었다.... 어린 남자아이가 고양이 밥그릇에 담긴 우유를 마시는 것을 봤다.'

 

'거리에서 개 한 마리가 깡통을 핥으며 코로 밀었고 얼어붙은 보도 위로 구르는 깡통이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이 책은 마치 빌드업을 하듯이 펄롱이 행하는 마지막 장면의 타당성을 하나씩 쌓아나간다. 펄롱의 눈과 생각을 통해  외면하려 하는 것들,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것들을 보기를 조용하지만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다. 그 호소는 막달레나 세탁소의 가슴아픔에 대한 공감을 넘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주변을 돌아보지 않겠냐고. 당신도 펄롱과 같은 갈등을 하는 사람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도 어쩌면 보고 싶은 것이 아니냐고, 용기가 없었을 뿐 아니냐며 펄롱을 통해 질문한다. 

  

' 한참 뒤 위층 커튼이 움직이더니 어린아이가 밖을 내다봤다. 펄롱은 억지로 자동차 키에 손은 뻗어 시동을 걸었다. 다시 길로 나와 펄롱은 새로 생긴 걱정을 밀어놓고 수녀원에서 본 아이를 생각했다.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광에 갇혔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 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 -그 아이가 부탁한 것을 단 한 가지 일인데 -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 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 

 

 펄롱은 아마 마지막 자신의 행동으로 그동안의 평안과 행복에 위협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와 같은 행동을 한 것은 삶의 가치가 평안과 행복을 넘는 무언가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그로 인해 더 큰 평안과 행복을 가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펄롱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 그걸 뭐라고 부르든 - 거기 이름이 있나? - 밖으로 마구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은 지나갔다......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

 

내가 좋아하는 배우 '킬리언 머피'가 이 책을 영화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개봉을 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기대가 된다. 킬리언 머피의 그 강인하고 우수에 젖은 깊은 눈이 펄롱을 어떻게 그려낼지 너무 기다려진다. 

 

 클레어 키건은 어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이 책에 담고 싶은 게 아닐까?

 

"당신이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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